INDEX
INTRO
01. 유년시절
02. 미술의시작
03. 이끌림
04. 유지의 힘
05. 분청에서 백자로
06. 토의 매료
07. 달항아리
08. 작가란
09. 작가의 삶
항아리
07. 작가란
08. 작가의 삶
Outro
INTRO
이동식작가의 작업실을 가는 길은 마치 여정과 같다.
길과 길은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자연으로 점진적으로 변모해 간다. 마을과 그다지 멀지는 않지만 자연의 기상이 느껴지는 이유는
나지막하지만 산의 기백이 있는 백병산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은 위안과 치유를 떠올리겠지만 이동식작가에겐 위안도 치유도 아닌 도예가 우선시 되었기 때문이다.
장작가마를 때는 작가는 가마의 연기로 인해 주변환경을 고려할 수 밖에 없기에
자연스레 도자기마을이나 인적이 한적한 자연을 고려한다.
30년 넘게 오롯이 흙만 만진 그는 삶이 도예이자, 도예가 삶의 터를 이끌어주었다.
그런 그의 도예를 만나게 된 여정이 궁금하다.
01. 작가의 유년시절
“모자람(결핍)은 재능의 발견이다”
작가님의 유년시절을 이야기 해달라
경북 포항에서도 더 안으로 들어가는 시골에서 자랐다. 시골 중에 시골이라 초등학교는 산 하나를 넘어서 등교했다. 은유법이 아니라 정말로 산을 넘어서 갔다 (웃음). 70년대에 들어서야 동네에 전기가 겨우 들어왔으니 물자가 귀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동네였다. 자급자족은 의식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즉, 모든걸 고치거나 만들어 사용할 수 밖에 없었으니 ‘만들기’가 곧 생활이었다. 자연스럽게 손재주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 밖에 환경은 마치 전형적인 시골의 이미지와 같다. 뛰어 놀고, 소몰이 하러 나가고, 서리 등을 하며 감자나 보리 등을 먹으며 자랐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역사 속의 환경 같다(웃음).
가족 중에 예술적 재능을 가진 분이 계셨는지?
예술적 재능이라기 보다 모두 손재주가 좋으셨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물자가 부족하니 모두가 고쳐 쓰거나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아버님이 그림을 잘 그리셨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당시에 교과서는 두꺼운 달력으로 표지를 싸서 사용하곤 했는데 그 여백에 아버님이 그림을 그려주셨는데 잘 그리셨다.
02. 미술의 시작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환경에서 미술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읍내로 나가 공부를 하게 되었다. 형제들과 함께 자취를 하였고 할머니가 밥을 해주셨다. 아무래도 그렇게 시골에 있다가 읍내로 나오니 조금은 기에 눌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를 보내고 고1 여름방학쯤 미술시간에 베니어판에 아크릴로 정물화를 그리는 수업이 있었다. 아크릴이라는 소재가 덧칠하면 다시 그려질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재미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미술을 해보라고 권해주셨다. 그렇게 미술부 권유를 받고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미술에는 무관심이었다. 그리고 미술부의 매력은 자율학습에 안 가도 되고 미술학원에 여학생들도 많았고 (웃음). 그렇게 미술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고, 꿈을 갖게 되고, 새로운 재능을 알게 되었다.
03. 예술의 이끌림
“이끌림은 의식이 아닌, 성향이 끌어주는 것.”
예술 혹은 공예에 매료된 이끌림은 무엇인가?
미술에 재미를 붙이고 미대를 지원했으나 아쉽게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재수를 하던 여름 즈음. 국민대에서 전공이 폐지된다라는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 입시는 회화과는 수채화, 디자인과 공예는 패턴이라는 별도의 시험이 있었는데 전공이 폐지되니 소묘만 준비하면 되었다. 그렇게 하여 1988년에 국민대 공예과에 합격하였다. 1학년은 통합수업이다 보니 공예와 관련된 전반적인걸 배웠다. 처음에는 목공예에 흥미를 느꼈으나 2학년 전공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서 도자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선배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금속이나 목공보다는 도자기의 흙이 왠지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막연하게 이걸 하겠다 싶었다. 가만히 보면 선택의 기로에선 의지나 열망보다는 성향이 이끌어 주었던 것 같다.
04. 도예의 지속
“이끌림은 사소해도, 지속은 거대한 축적이다”
이끌림은 입문의 동기라면 지속은 그 이끌림을 만들어주는 힘인데, 작가로 하여금 지속을 지탱시켜주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전공을 선택한 이끌림은 성향이었지만 그 다음은 ‘이걸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지’라는 질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복학하고 나서부터 지방의 여러 도요지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원토도 구하러 다니고, 대학원 때는 일본에 5개월동안 있기도 하였다. 그렇게 천천히 나의 것을 위한 기반의 시간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축적의 원동력은 단순하게도 흥미와 재미였다. 이게 없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나에겐.
05. 백자의 만남그 흥미와 재미가 분청에서 백자로 확대된 것 같다. 어떻게 하여 확대와 전환으로 이어졌는가?
대학원부터는 본격적인 나의 틀 다지기를 했던 시기였다. 이때 분청을 주로 하였는데 이유는 접할 기회가 쉬웠기 때문이며 당시 교수님이 분청을 하셨다. 그러니 큰 생각 없이 시작은 그렇게 가볍게 시작되었다. 다만 당시에 수 없이 들었던 것은 사이즈와 관련된 것이었다. 즉, 큰 작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큰 작업은 기술이 많이 필요한데 이것을 익히면 나머지 작업을 다루기가 쉬워진다는 것이었다. 근데 또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큰 작업은 체력과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걸 다룰 시기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이유가 더 컸다. 그런 이유로 옹기도 배우면서 분청에 집중하였었다.
졸업즈음하여 흥미와 재미가 있어도 우선은 생활이 되어야했다. 지금은 도자기가 각광 받지만 당시에는 도예가로써의 삶은 쉽지 않았다. 취직은 지금처럼 어려웠으며 특히 생활도자기가 아닌 하고 싶은 도자기를 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은사님의 권유로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원 도자기 관리에 취직하게 되었다. 2000년에서 2005년의 시기인데 이때를 회상하면 공부의 시기였던 것 같다. 이 시기의 경험들을 통해 도자기와 관련된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취직하였기에 작가로써 잠시 작업을 내려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작업에 대한 열망을 더 키웠던 시기였다. 그러던 시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결정이 되었다. 용산개관에 맞춰 전시 기획이 국보급 백자 항아리 9개가 있었다. 대영박물관에서, 일본에서, 국내 박물관에서 그리고 개인 소장자들에게서 빌려 전시 기획을 잡고 있었다. 그때 평범한 듯한 백자항아리들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커다란 에너지에 압도당하면서 백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시기는 공부와 함께 백자와의 만남의 시기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백자로의 전환은 아니고 당연하지만 그 때 백자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단지 백자에 압도당한 그 느낌으로 분청에서 백자로 확대된 것이다. 백자. 즉, 백토의 매력은 분청과 다르게 민감하다. 작업실에서 조금이라도 먼지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성질이 바뀐다. 그래서 작업실도 늘 깨끗하고 청결해야 한다.
06. 흙의 매료
“퀄리티는 믿음의 반영이다”
도예 아니 흙의 매력은 무엇인가?
흙은 포근함과 따스함이 있다. 그리고 그 흙을 물과 불을 통해 변형시키는 즐거움이 있다. 기성품의 흙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흙을 수집하고 만드는 이유는 거기서 나만의 가치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성품의 흙을 사용해도, 현실과 타협해도 된다. 그러나 내가 표현하고 싶고, 내가 아는 섬세함(퀄리티)은 누구보다도 내가 안다. 그래서 누가 알기보다 떳떳한 내가 중요하다. 그러니 모든 과정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호기심과 믿음에 반영이 결국 나만의 흙 만들기의 고집 이유이다.
07. 달항아리의 매료
“우연과 불규칙은 자연스러움의 깊이를 만든다”
그렇다면 달항아리의 매료는 무엇인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이관 전시회 때 항아리가 달항아리였다. 그때 받은 느낌으로 서서히 달항아리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항아리는 외형과 역사. 그리고 평가보다 제작할 때 더 끌린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멋과 깊이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과 멋은 불규칙 속에서 오는 미묘한 이끌림이다. 이건 마치 밥을 전기밥통에서 하느냐 가마솥에서 하느냐와 같다. 개인적으로 전기가마든 가스가마든 도자기는 무엇으로 만들어도 괜찮다. 난 장작가마에 대한 고집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장작가마에서만 나오는 결과와 맛이있다.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축적되면 어느 정도는 예상가능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상했던 대로는 아니다. 흙이 장작가마 속의 불을 만나면 색감이 오묘해진다. 의도하지 않은 우연성과 불규칙이 가미되면 자연스러움의 깊이가 생긴다. 그래서 만드는 사람은 재미가 있다. 그것이 장작가마의 매력이자 달항아리가 장작가마에서 구워지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끊임 없는 대화의 재미가 있다. 나만의 대화. 어떻게 만들지? 선은 어떻게 하지? 하나하나의 선택에서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중요요소는 딱히 없다. 형태, 굵기, 비례, 색감….모두 중요하다. 그래서 달항아리는 전체의 어울림으로써 멋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자연스러움과 멋은 불규칙과 우연에서 오는 미묘한 이끌림이다”
08. 작가의 생각30년을 이어오는 도예가 이동식은 어떠한 생각으로 도자기를 만드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기 보다 어렴풋한 느낌과 방향을 쫓아 간다. 즉,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다. 그렇게 도예가로써 30년을 이끌고 있고 또 그 직관력으로 다음을 본다. 의식보다는 흐름의 관찰과 인식, 그리고 재미로 한다.
소비자들이 생활도자기든, 작업이든 작가의 물건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디자인적이거나 명성도 있겠지만 작품과 삶의 태도를 교감하는 거라 본다. 그리고 그 태도가 각자의 ‘작가성’을 드리운다.
다만 소비자도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공산품도 처음은 표준부터 시작한다. 익숙해지면 다른걸 찾게 되고 그 감각은 날로 섬세해진다. 그 섬세함은 비교대상에서 발전되기도 한다. 비교가 있어야 무엇이 좋은지 판가름을 할 수 있다.
09. 작가의 일상보통 회사원은 일정한 업무시간이 있지만 작가님은 작업과 일상을 어떻게 구분하며 시간을 구축해가는가?
흐르는대로 산다. (웃음)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끝낸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의 시간보다 자연의 시간을 따른다. 보통 새벽 5시쯤 기상하여 일과를 시작한다. 반려견에게 밥을 주고, 닭에게 사료를 주고, 집 주변의 풀들을 뽑고, 아침을 07:30에 들면 그 다음부터는 오전 작업을 시작한다. 오전은 주로 도자기들을 만들고 그 작업물들을 건조대에 옮긴다. 그 일이 마무리되면 각종 집안의 잡일들과 휴식을 취한다.
오후가 되면 오전에 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건조 되어 주로 깎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 온다. 시계를 보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몸이 이 패턴에 베어있다. 그냥 흐르는대로.
개인적으로 도자기 이외에 관심이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먹고 노는 것이다 (웃음). 꽃보다는 나무나 농작물을 좋아한다. 땅이 있으니 심고, 심다 보니 밭이 되었다. 키우다 보니 관리를 하게 되고…
OUTRO
대화를 나누면 조금이나마 그 사람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보다 주변 환경을 통해 보다 넓게 알게 되기도 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자연 속에 있다는 점이 그러하지만 그 자연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흐르는 대로 사는 그의 모습을 보면 유유자적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흐름은 자연의 순리이며 그 안에서 호기심과 재미를 찾아가며 즐겁게 살고, 또 즐겁게 작업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둘은 분리되기 보다 오히려 하나로써 ‘그’라는 그림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러한 모습에서 여유라는걸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족함도 만족의 추구나 경계도 아닌 지금에 충실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한 느낌이 그의 삶에서, 또 그의 작업에 베어 품어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