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2021년 10월 15일부터 열리는 솔루나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허상욱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기법인 분청기법을 현대적 미감으로 해석해 나가며,
지금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와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추석이 지난 뒤, 높고 푸른 하늘 밑 황금빛 벼가 펼쳐진 가을에 방문한 허상욱 도예작가의 작업실은 평화롭고 한적했다.
대학원 졸업 후부터 한 곳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20년의 세월이 담긴 그의 작업실에서는
작가의 고뇌와 고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사진과 영상 촬영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분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1. 미술을 시작한 계기
이사를 많이 다녔던 유년시절, 자연스럽게 혼자 놀며 뭘 만들거나 끄적끄적 낙서를 하며 놀았죠.
그걸 통해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게 됐습니다. 진로를 결정하는 고등학생 때에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 고고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가족회의를 통해 고고학 대신 2순위었던 미대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공예미술학과에 진학해서 여러 물성의 공예를 공부하게 되었고, 역사와 관련이 깊은 도자 분야로 저절로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낸 시간들이 아마 제 안에 내재돼있었던 공예가 아닐까 생각해요.
2. 박지기법
대학교 3학년 때, 호암미술관에서 ‘분청사기특별전’을 보고 분청의 매력을 느껴 작업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 때는 박지라던지 다른 어떤 기법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없었어요.
분청작업을 하면 할수록 박지라는 기법이 점점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화장토를 바르고, 덧바르고, 말리는 시간을 가지고 깎아내면서 나오는 특별한 공간감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작업 행위를 통해 ‘시간’’에 대한 나 스스로의 감정, 태도를 재발견하게 되면서 내면의 고민이나 생각이 해소되는 느낌도 받았고요.
내면을 되짚어보는 시간여행이 절로 되기도 합니다.
저와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3. 앞으로의 방향
계속 무언가 시도해보고 싶어요.
여태까지 전통에 기대어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조금 더 새로운게 뭐가 있을까. 나답게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 뭐가 있을까.
늘 고민을 하는 부분이고,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저의 작업이죠.
가장 손 쉽게는 색을 조금 더 써보는 방법도 있고요. 현재 작업하고 있는 은채 작업도 조금씩 발전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은채는 기존 분청에서 느낄 수 없는 다른 질감과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색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깎아낸 면을 은으로 다시 채워 넣는다는 의미도 재미있었고요.
4. 후배 작가들을 위한 조언
꼭 분청 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꾸준함’ 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꾸준하기 위해서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 재미를 찾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도 많이 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저 주어진 것으로만 창작을 해나가다 보면 재미가 없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는 걸 경험해 보았으니까요.
분청의 경우 새로운 흙을 찾는 방법도 있겠고, 선조들의 오래된 기물을 공부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오래됐지만, 그래서 찾아지는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또 한 편으로 최첨단의 시대 혹은 타 장르 이런 것들도 눈 여겨보고 공부하려고 애쓰다 보면, 분청 안의 내용도 훨씬 풍부해지고,
나 다운 작업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조금 더 알려는 노력과 꾸준함이 중요하고, 꼭 전달하고 싶은 말은 “호기심을 잃지 마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