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의 수용은 있는 그대로의 수용 작가들의 연대기를 보면 가끔 중간에 쉬는 시간들이 있다. 긴 연대기에서 보면 매우 짧은 요양생활 혹은 여행으로 기술되지만 작가로써는 가장 심란한 시기이자 큰 변화기의 시기일거라는 상상해본다. 중간에 작업을 멈춘 이유는 무엇인가? 2006년 개인전을 마치고 그 작업으로 공예문화진흥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당첨되어 SOFA NY Fair (New York Sculpture Objects and Functional Art)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기 전에 너무 좋다. 도착해서 페어를 둘러 보는데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고 드디어 내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구나 하며 들떠있었다. 그렇게 페어를 돌아다닌 다음 자리로 돌아와 내 작업의 박스를 여는 순간 굉장히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당시에 만든 작업은 유리 같지 않은 유리를 만들었었다. 유리가 아닌 금속 같은 작업이었다. 그런데 왠지 사이즈 면에서도 작았고, 보여진다는 게 굉장히 창피하게 느껴졌었다. 당시의 내 작업은 컨셉도 명확하고, 기술적으로도 높았고, 새로운 테크닉이었고 남들과 다르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보여지고 나니 사람들을 끌만한 게 없는 거였다. ‘잘 만들었네, 독특하네’에서 끝나버리는…나 같아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다. 다른 작업들과 비교되니깐. 그때 많은 생각을 갖게 되면서 복잡해졌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뭘 해야 할지, 뭔가 잡히지가 않는 거다. 생각이 많아지니 작업이 안됐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작업이 한국에서는 잘 팔렸다. 잠시 멈췄던 이유는 ‘아직 해외로 나가기에는 내 레벨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구나’ 하는 자괴감이 컸던 것 같다. 우리가 책이나 전시장에서 잘 알려진 작가들을 보면 ‘우와 멋있다’ 와 같은 감탄사가 나오는데 페어는 이러한 작가와 함께 내 작업도 나간다는 거다. 그러면 이 작가들은 더 이상 나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겨야 할 대상이 되는 거다. 유명하고 잘 알려진 데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는데 나 또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거기서 경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냥 그룹전이나 순회전이였으면 크게 개의치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게 페어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때 내 관점이 바뀌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 계기가 작업을 멈추게 된 큰 동기가 된 셈인가? 그렇게 페어가 끝나고 2006년에 작업실의 불을 껐다. 정확히는 블로잉을 하지 않았던 거다. 그 기간 동안 가마 제작도 하고 건축 유리를 주로 했다. 건축 유리라는 게 조형물을 만들고 조각하는 것이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이후로도 2년에 한번은 개인전을 했다. 2008년에 개인전을 했을 때 유리판을 갈아서 빈 공간을 만들어 에폭시를 채워 넣는 기법을 사용하여 벽에 거는 작업을 했다. 전시회를 위한 작업이었지만 그때의 시도가 결론적으로 지금 작업으로 연결된 셈이다. 왜나면 그때의 기법이 연마를 했었고, 색이 있는 에폭시를 채워 넣는데 나중에 보니 색 유리를 갈면 되는 거였다. 그러니깐 굳이 블로잉을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연마 기술을 배우고, 큰 덩어리를 다루는 걸 배우고, 깎는 걸 배웠다. 즉, 깎고 조각을 하며 연마 하는 걸.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렇게 하면 작업이 될까 했던 것이 2010년 작업이었다. 지금 내 유리작업의 발판인 셈이다. 결국 보면 예전에 나를 찾는 과정의 시도들이 하나씩 도와주는 요소들로 연결된 셈이다. 이 작업을 했었기에, 이 과정이 나오고 이 과정을 경험했기에 현재의 작업이 나오는 단순한 이치다.